
1949년 3월 1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첫 삼일절 기념사 발표 - '기미독립운동 정신'
1949년 3월 1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맞이한 삼일절 기념식은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선 역사적 분기점이었습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1919년 기미년의 독립 선언이 결코 과거의 유물이 아님을 선포했습니다. 그는 3·1 운동을 대한민국 민주공화제의 법통적 뿌리로 규정하며, '역사의 연속성'을 강조했습니다. 일제 강점기라는 암흑 속에서 피어난 독립에 대한 열망이, 마침내 대한민국이라는 실재하는 자유의 국가로 결실을 보았음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승만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 축하식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이 3·1 운동에 있음을 명확히 했습니다. 그에게 3·1 운동은 단순히 일제를 몰아내자는 운동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자유민’임을 자각한 근대적 각성이었습니다. 그는 ‘민국(民國)’, 즉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세우겠다는 약속이 30년 만에 실현되었음을 강조하며, 역사의 연속성 위에서 국가의 기틀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1949년의 국내외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이승만은 제국주의 일본의 압제보다 더 교묘하고 파괴적인 위협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시했습니다. 그는 3·1 절 축사에서 공산주의 세력을 향해 날 선 비판을 던집니다.
“내가 이왕에도 수차 말한 바와 같이 공산반란은 정부의 힘으로만 저제키 어려운 것이니 민간 각 단체의 민족운동과 아울러 청년과 부녀들이 열열한 애국심을 발휘해서 삼일정신(三一精神)을 부활함으로써 능히 우리 단체도 보존하고 개인생명도 보전하며 국권도 공고할 것입니다.”
이승만에게 반공주의는 단순한 정치적 구호나 혐오의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유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기미 독립 선언서가 천명했던 “인류 평등의 대의”와 “민족 자존의 권리”는 자유를 토대로 한 체제적 울타리 안에서 실현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는 반공을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 놓았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49년의 반공은 외부의 침략뿐만 아니라 내부로 침투하는 전체주의 사상으로부터 신생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제2의 독립운동’이었습니다. 그는 삼일절의 정신을 빌려 국민에게 자유의 대가는 결코 공짜가 아니며,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반공이라는 시대적 결단이 필요함을 역설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축사 끝부분에 국민의 각성을 촉구했습니다.
“다시 선언커니와 나는 왼 세상이 다 적색화하고 왼 세계가 다 합해서 우리를 공산화시키려 할지라도 우리는 죽엄으로써 항쟁하여 우리나라는 우리의 것이오. 우리일은 우리가 해간다는 굳은 결심으로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 나라와 민족을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승만이 삼일절 정신을 통해 경고하고자 했던 것은 ‘자유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안일함’이었습니다. 독립은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대마다 나타나는 자유의 위협에 맞서 끊임없이 재정립하고 수호해야 하는 영원한 과제임을 가르쳐 줍니다.
삼일절의 함성은 멈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와 번영을 지켜내라는 준엄한 명령으로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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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 이승만의 생애와 업적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역사적 교훈으로 기억되도록 '기념관 건립'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