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8년 2월 12일, 대한민국 원자력 시대의 개막 – ‘대통령 직속 원자력원 설치’
6.25 전후 복구가 진행 중이던 당시에 정부는 에너지 부족 문제와 산업 기반 확충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전후 복구와 경제 원조를 넘어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과학 지식과 기술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였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통해 그 뜻을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1958년 2월 12일,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원자력원(原子力院) 설치를 공식 발표하였습니다. 원자력원은 원자력 정책의 수립, 기술 연구, 인재 양성을 총괄하는 기관으로서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원자력 기술 협력국으로 자리매김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과학기술을 통해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서고자 하는 포부를 원자력 정책에 담았습니다. 원자력원의 설치 이듬해인 1959년 서울대학교 원자력공학과가 신설되고, 한국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가 설립되는 등 전문 인재 양성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는 국가가 과학기술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한 첫걸음이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 가능한 기술력 확보의 출발점이었습니다.
1956년 9월 17일 원자력 전시회 개회식 기념사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은 자유를 의미합니다. 원자력은 한국을 강력하고 훌륭한 민주국가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통일을 촉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원자력의 힘을 단순한 기술이 아닌 국가의 자립과 자주적 성장의 원동력으로 인식하고,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지식과 기술’이라는 새로운 자원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1950년대 후반, 전후 복구로 원조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국가 발전의 핵심 동력을 과학기술에서 찾고, 미래 산업과 국방, 교육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국가 비전과 의지를 담은 초대 대통령의 원자력 정책은 오늘날 세계적인 원자력 기술 보유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의 초석이 된 위대한 결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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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승만 대통령의 원자력 관련 영상 보기 (제목을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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