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어록

자유의 권리만 알고 자유의 한계를 모르는 이들은 자유의 권리를 누릴 자격이 없다.

'Japan Inside Out' - The Challenge of Today

이젠 천하 근본이 농사가 아니라 상업이다.

1901년 4월 19일자 제국신문 논설 中

우리 대한 삼천리 강산은 곧 2천만 생명을 싣고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이 몰아치는 큰 바다를 외로이 나가는 배와 같다.
우리는 지금 당장 물에 빠져가는 배 안에 앉아있으니 정신을 차리고 보아야 한다.

<독립정신> 中

대한 인민의 마음속에 독립이란 두 글자가 없기 때문이다.
인민들의 마음속에 독립하려는 마음을 넣어주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제일가는 일이다.

<독립정신> 中

전국을 통틀어 양반은 1000분의 1도 못된다.
나머지 999는 모두 그 양반들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실로 나라에서는 1000분의 999는 다 잃어버리고 앉아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독립정신> 中

지금 이 시대에 노예의 풍속을 가진 나라는 대한과 청국밖에 없다.
슬프다, 대한의 형제들이여.
어찌하여 옛 법에 익숙하여 내 나라 내 동포를 소나 말 같이 대접하며 짐승처럼 사고파는가.
미국 사람들은 저들과 생김새가 다른 흑인 노예를 해방하기 위해 동포끼리 전쟁까지 벌이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이 나라는 동포를 노예로 부림을 당연하게 여겨 노예법을 여태껏 폐지하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독립정신> 中

우리는 우리 집 종들이나 남의 집 하인배들,
낮고 천하게 여기는 부인과 여자들,
내 자식이나 남의 자식이나 어린아이들을 다 한층 올려 생각해야 한다.
그들을 사람의 숫자에 포함시키지 않고 사람에게 속한 물건으로만 알던 모든 악습을 버리고,
국법과 올바른 도리 앞에서 그들을 모두 동등한 사람으로 대접하여 따로 서서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국민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독립정신> 中

모든 정치제도의 성패는 항상 그 나라 백성들의 수준에 달려있다.
굽어 자란 나뭇가지는 갑자기 펴지 못하고,
앉아서만 자란 아이는 하루에 멀리 가지 못한다.

<독립정신> 中

교육을 하는 근본 목적은 사람이 가진 지혜와 본성을 거울처럼 맑게 닦아
세상만사를 있는 그대로 거울처럼 비추게 하여 잘잘못과 우열을 가리게 하려는 것이다.

<독립정신> 中

우리는 선진국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여러 가지를 모두 배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배우는 데 그치지 말고 실행하고 옮겨야 한다.
남들이 흉보고 욕하는 것을 상관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야 한다.
형식적으로 하는 체해서는 소용이 없다.
모범을 보이는 사람은 진심으로 부러워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독립정신> 中

진실로 만국이 서로 통하여 한 집 같이 섞여 살며 형제같이 사랑하여 정의가 친밀하면 풍속이 스스로 같아지고 인물, 언어, 문자까지도 다 한결같이 될 것이다. 그렇게 지난 100년 동안에 세상이 변해 온 것을 보면 오는 100년에도 또 어떻게 변할지 짐작할 수 있다.

<독립정신> 中

구구절절이 더없이 적실하여 장부의 혈기를 격동시키는 중에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모든 사람은 다 동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이니, 이 한 구절로 말미암아 모든 조목의 근본이 생겼다. 사람마다 나도 남과 같은 권리가 있음을 깨닫고, 그 권리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긴 결과 이렇듯이 보배로운 기초를 세우게 된 것이다.

<독립정신> 中

조물주는 모든 사람에게 다 같이 권리를 주셨으므로 생명과 자유의 안락한 복을 추구하는 것은 다 남이 빼앗을 수 없는 권리이다. 한 사람이나 한 나라가 자기가 제 일을 하는 것을 자주라 이르며, 따로 서서 남에게 의지하지 않은 것을 독립이라 이르는데, 이는 인류로 태어난 자에게 부여된 천품으로서 인간이라면 모두 다 같이 타고난 것이다.

<독립정신> 中

공산주의는 실패한다.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이유 때문이다.
1. 재산을 나누면 근로의욕이 꺾인다.
2. 기업가를 없애면 혁신이 이루어지지 못한다.[43]
3. 지식인을 없애면 모든 사람이 우매해진다.
4. 종교를 없애면 도덕이 타락한다.
5. 소련을 조국으로 믿으면 배반당한다.

1923년 태평양잡지 '공산당의 당부당' 中

평화주의자들은 간첩과 같다.(Pacifists Are Like Fifth Coulumists)

‘Japan Inside Out’ 中

One who believes in the democratic principles of government is essentially an individualist. The power of the government is derived from his citizenship. Therefore, his personal rights and personal freedom are the fundamental basis upon which the structure of the nation is built. Different from totalitarian ideology, which holds that the people should obey the government, a democracy, on the other hand, insists that the people's rights should be protected against any possibility of the government's usurpation. (민주주의적 정부 원리를 신봉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개인주의자다. 정부의 권력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그 위에 한 국가의 구조가 세워지는 기반이 된다. 국민은 정부에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체주의 이념과 달리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권리가 정부에 의한 그 어떤 침해의 가능성으로부터도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Japan Inside Out’ 中

It has been my task to present the case of Korea as an example to show that she is a victim—the first—of Japan's lust for power. Her destiny cannot be separated from that of the free peoples of the world, nor from the lot of those peoples who once knew freedom and have lost it for a while. At long last—perhaps sooner than we dare to hope—the democratic forces of the world will thrust the Japanese back on their islands, and peace will reign again in the Pacific. In that day Korea will rejoin the ranks of the free and again become known as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한국이야말로 일본의 야욕에 바쳐진 첫 희생양이었다는 사실을 조명하는 것은 나의 오래된 숙업이었다. 한국의 운명은 세계의 자유인들의 운명과 분리될 수 없고, 한 때 자유를 누렸지만 지금 자유를 상실한 자들의 운명과도 분리될 수 없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어쩌면 우리의 바램보다 일찍, 전 세계의 민주주의 진영이 일본을 패망시켜 섬 안으로 밀어넣을 것이고, 태평양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그 날이 오면 한국은 자유 국가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고, 다시금 고요한 아침의 땅으로 알려지게 되리라.)

‘Japan Inside Out’ 中

우리 독립의 서광이 비치나니 일심합력으로 왜적을 파하고 우리 자유를 우리 손으로 회복합시다. 나의 사랑하는 동포여, 이 말을 잊지 말고 전파하며 준행하시오. 일후에 또 다시 말할 기회가 있으려니와 우리의 자유를 회복할 것이 이때의 우리의 손에 달렸으니 분투하라! 싸워라! 우리가 피를 흘려야 자손만대의 자유 기초를 회복할 것이다. 싸워라! 나의 사랑하는 2천 3백만 동포여!

1942년 6월 13일, VOA 단파방송연설 中

이론상으로 공산주의는 그럴듯하다. 만일 이 주의를 전달하려는 사람들이 단순히 이 주의를 주의대로 전하면 나도 그들을 존경할 것이다. 만일 이 주의가 민주주의와 같이 세계 대중에 복리를 줄 만한 주의가 된다면 아무도 막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자들이 아름다운 이상으로서 양의 가죽을 만들어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야심자를 덮어 씌워 공산주의를 소련의 앞잡이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세계 사람들에게 각각 정부를 파괴시키고 나라를 크레믈린의 독재하에 넣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당신의 동생일지라도 공산주의의 훈련을 과학적으로 받은 뒤에는 당신의 동생이 아니다. 그 동생은 따라서 소련을 자기의 조국이라고 부르고 국가 공업을 파괴하며, 당신의 정부를 뒤엎고 당신의 동포를 넘겨준다. 그러면 드디어는 당신의 나라가 소련의 위성국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엔 당신의 동생은 집 없는 거지가 되고, 가족은 노예가 되며, 그 뒤에는 이것을 깨달아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1946년 2월, 6주간의 민정 시찰을 위해 지방을 순회하며 돌면서 한 말

민주정체의 요소는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국민이나 정부는 항상 주의해서 개인의 언론과 집회와 종교와 사상 등 자유를 극력 보호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인민의 자유권리와 참정권을 다 허락하되 불량분자들이 민권자유라는 구실을 이용하여 정부를 전복하려는 것을 허락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기념 연설 中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1950년 10월, 평양 탈환 후 연설 中

조금만 더 견디면 전쟁이 끝난다. 전쟁이 끝나면 우리는 나라를 새로 건설해야 한다. 전후 복구와 나라를 발전시키려면 고급 교육을 받은 인재가 필요하다. 그 때를 위해 대학 재학생들을 보존시켜야 한다.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

1951년 2월 18일, 대학생 징집연기조치 시행

배신을 일삼는 일인들은 진주만을 공격함으로써 미국을 정복하고자 하였소. 그러나 미국은 일본의 경제 구조를 엄청난 규모로 구축해 주었고, 그래서 일부 아시아 국가의 국민들 중에는 일본만큼 대단한 지원을 받으려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할 수밖에 없다고 농담을 할 정도라오.

1951년 4월 25일자 메모, 대일 미국 원조와 일본경제의 급속한 부흥에 대해 분개하며

전쟁이 끝나면 하루빨리 부흥 사업을 펼쳐야 할 것이니 그 기초가 되는 철강 산업 진흥책을 마련하라. 특히 주택 건설 사업을 위한 함석, 철판 등의 공급을 담당할 제강 사업 건설 계획을 우선적으로 강력히 추진하라. 미국이 돈을 못 내겠다면 정부가 보유한 자체 보유 달러로 공장을 지으라.

1953년 4월 4일, 내각에 특별 지시한 내용

제너럴 원, 자네는 지금 공산 북한으로의 귀환을 반대하는 애국 청년들을 포로라고 생각하나? 그들은 모두 우리의 동포요, 애국하는 청년들이야, 그들을 구해야 해.

1953년 반공포로를 석방하기 직전, 원용덕 헌병 사령관을 불러 자신의 의도를 내비치며

나는 내 신분의 권한으로서 전 반공포로를 석방하도록 명령하였다. 나는 이 조치를 단행함에 있어서 유엔군 당국 및 관계 당국과 전연 협의 없이 진행한 것이다. 나는 벌써부터 제네바 협정 및 인권 옹호의 제원칙하에 반공 포로들은 석방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반공포로 석방 직후 심정을 토로하며

저 모습이 얼마나 자유스럽고 평화스럽습니까? 나는 반공 포로를 공산 지옥으로 보내느냐, 광명의 이 땅에 머무르게 하느냐는 문제를 가지고 근 일주일 동안 기도한 끝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이번 조처를 감행한 것입니다.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 특사로 파견된 로버트슨 미 국무성 차관보가 휴전을 설득하러 이승만을 찾아갔을 때, 창밖의 경무대 숲을 날고 있는 까치 한 쌍을 가리키며

나는 정전이라는 것이 결코 싸움을 적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게 하며 고난과 파괴를 더하고 전쟁과 파괴적 행동으로 공산 측이 더욱 전진하여 오게 되는 서곡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에 정전의 조인을 반대하여 왔던 것이다. 당분간 공산압제 하에서 계속 고생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우리들의 동포들에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동포여 희망을 버리지 마시요, 우리는 여러분을 잊지 않을 것이며, 모른 체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한국 민족의 기본 목표는 계속 남아있으며 결국 성수되고야 말 것입니다.

1953년 7월, 6.25 전쟁 정전협정 직후의 성명

우리는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이 조약으로 인해 많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며, 이 조약은 앞으로 우리를 번영케 할 것입니다.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한미동맹) 체결 후

언제까지 미국이 사다주는 비료에 의존하고 살아야 하는가. 당장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미국이 제공하는 원조자금으로 공장을 건설하고 기술자를 양성해서 필요한 물자를 국내에서 생산해야 우리 민족이 살아날 수 있다. 내각은 무슨 일이 있어도 미국 측과 상의하여 반드시 비료 공장을 지어라.

비료 공장 건설안을 거부한 미국에 대해 울분을 토로하며

내가 산에 올라가 나무 한 토막이라도 베는 사람은 엄벌에 처한다고 공포했지만 소용이 없어요. 당장 땔감 없어 밥도 못 지어먹을 형편인 국민들에게 나무를 베지 말라고 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말이오. 다른 땔감을 만들어주고 산에 올라가지 말라고 해야 국가의 영이 제대로 서는 것이지, 지금 우리가 석탄 열심히 캐서 연료를 공급해야 사람들이 나무를 베지 않을 것이오. 내가 어떻게 하든 식량은 미국에서 끌어다 댈 테니 당신은 땔감 문제를 책임지시오. 우리 힘을 합쳐 나라를 살려봅시다. 내 눈에 서울시내에 장작 실은 마차가 다니는 모습이 안 보이게 해 주시오.

1957년경 정인욱 강원탄광 사장을 대한석탄공사 총재로 임명하며

부정을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지. 이 젊은 학생들은 참으로 장하다.

4.19 시위로 다친 학생들이 입원한 병원을 위문하며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 ‘3.15 정부통령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다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였다.

1960년 4월 26일, 대통령 하야 성명 中

나는 위로받을 필요가 없다. 불의에 궐기한 백만 학도가 있고 정신이 살아있는 국민이 있으니,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나라의 미래는 밝다.

하야 후 이화장에서 머무를 때, 대만 장제스 총통이 보낸 위로편지에 대한 답장 中

잃었던 나라의 독립을 다시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 우리 국민은 알아야 하며 불행했던 과거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노예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유언이다.

1965년 7월, 유언

이제 저의 천명이 다하여 감에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던 사명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몸과 마음이 너무 늙어 버겁습니다. 바라옵건대 우리 민족의 앞날에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시옵소서. 우리 민족을 오직 주님께 맡기고 가겠습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1965년 7월, 서거 직전 마지막 기도